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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영화가 꼭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걸 범죄도시4를 보고 나서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1편부터 4편까지 극장에서 직접 챙겨본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면, 이번 편은 나오는 내내 "아, 아쉽다"는 말이 입 안을 맴돌았습니다. 그런데도 관객은 또 천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가 왜 계속 흥행하는지, 그리고 왜 갈수록 뭔가 헐거워지는 느낌인지, 직접 겪어보니 꽤 명확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흥행 요인 — 마동석이라는 장르
범죄도시 시리즈를 두고 "마동석 유니버스"라는 말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1편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건, 마석도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강한 형사라서 재미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묵직한 주먹 한 방에 날아가는 싸대기와, 동문서답처럼 던지는 엉뚱한 대사가 절묘하게 섞여 있었거든요. 그 균형이 1편에서는 정말 탁월했습니다.
실제로 범죄도시 1편은 제작비 70억 원으로 국내 관객 688만 명을 동원해 누적 매출액 56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2편은 제작비 130억 원에 국내 관객 1,269만 명, 월드 박스오피스 1,400억 원을 돌파하며 2022년 천만을 넘긴 유일한 영화가 되었고, 3편 역시 국내 관객 1,068만 명으로 그해 서울의 봄에 이은 유일한 천만 영화였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코로나 이후 한국 영화 전반이 침체에 빠진 상황을 감안하면 이 수치는 더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는 왜 이렇게 계속 흥행하는 걸까요. 제 경험상 이건 캐릭터 소비의 문제라기보다 일종의 장르 소비에 가깝습니다. 관객들은 "범죄도시"를 보러 오는 게 아니라 "마동석이 나쁜 놈을 때려잡는 그 영화"를 보러 옵니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고전적 서사 구조, 즉 선이 악을 응징하고 질서가 회복된다는 이야기의 틀이 주는 안도감과 카타르시스가 이 시리즈의 핵심 동력입니다. 여기서 카타르시스(catharsis)란 쌓인 감정적 긴장이 극적 결말을 통해 한꺼번에 해소되는 감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론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악당이 얻어터지는 장면에서 가슴이 뻥 뚫리는 그 기분"입니다.
1편과 2편에서 이 카타르시스가 제대로 터진 건 빌런들이 단순히 강해서가 아니라 약자를 짓밟는 장면들이 충분히 쌓였기 때문입니다.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두다가 마석도의 주먹 한 방으로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구조, 이게 핵심이었습니다. 이번 4편에서도 마동석의 액션 자체는 여전히 임팩트 있었고, 박지환이 연기하는 장이수의 등장도 웃음을 만들어주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봤을 때 분노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채로 대결 장면이 왔다는 느낌이 강했고, 그래서인지 마지막 격투가 끝났을 때 "시원하다"보다 "끝났다"는 감각이 먼저였습니다.
- 1편 제작비 70억 → 매출 560억: 투자 대비 수익률 약 8배
- 2편 2022년 기준 국내 유일 천만 영화, 월드 박스오피스 1,400억 돌파
- 3편 역시 당해 국내 단 두 편뿐인 천만 영화 중 하나
- 1편부터 4편까지 총 관객 4천만 돌파, 역사상 최초 트리플 천만 시리즈 달성 전망
액션 연출과 빌런 완성도 — 갈수록 헐거워지는 이유
범죄도시 시리즈는 편마다 감독이 바뀌면서 액션 연출 스타일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1편을 연출한 강윤성 감독은 당시 첫 장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과 조연 캐릭터 활용, 그리고 롱테이크(long take) 활용이 탁월했습니다. 롱테이크란 편집 없이 카메라를 오랫동안 끊지 않고 찍는 기법으로, 씬(scene)의 긴장감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입니다. 1편의 격투 장면에서 그 롱테이크가 주는 숨막히는 리얼리티를 제가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첫 장편에서 이 정도 연출이 나올 줄은 몰랐거든요.
2편은 조감독 출신 이상용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아 건물 복도, 엘리베이터, 버스 내부 같은 협소한 공간에서의 격투를 집중 활용했습니다. 빠른 편집(fast cutting)으로 스피드감을 극대화한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빌런 강해상의 존재감도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빠른 편집이란 짧은 컷들을 연속으로 이어 붙여 속도감과 긴장감을 높이는 편집 기법을 말합니다.
3편은 스타일리시한 조명과 명암 대비를 높인 화면 구성으로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의 존 윅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시각적 연출을 시도했습니다. 마동석의 액션에 복싱을 접목해 펀치 장면에 진동 효과를 더하는 등 임팩트를 높이려는 시도는 눈에 띄었지만, 씬 전환이 지나치게 빠르고 어두운 탓에 디테일이 뭉개지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은 화면이 눈에 잘 안 박힌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4편은 무술 감독(action choreographer) 출신의 허명행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무술 감독이란 영화 내 격투 동작과 액션 시퀀스 전체를 설계하고 지도하는 전문직으로, 배우의 움직임부터 카메라 앵글까지 액션의 시각적 완성도를 책임지는 역할입니다. 허명행 감독은 범죄도시 1편부터 3편까지 무술 감독으로 참여해온 인물로, 액션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켰습니다.
그런데 제가 4편을 보고 가장 아쉬웠던 건 액션 자체가 아니라 빌런이었습니다. 메인 빌런 백창기는 단도를 활용한 화려한 근접전이 특기인 캐릭터인데, 문제는 최후의 대결 장소가 비행기 내부라는 극도로 협소한 공간이었다는 점입니다. 구르기나 도약이 불가능한 장소에서 스피드를 완전히 봉인당한 채 싸워야 했으니, 중반까지 쌓아온 그 위협적인 존재감이 마지막에 맥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다 1편의 장첸, 2편의 강해상처럼 일반 시민이나 약자를 향한 잔혹한 장면들이 충분히 묘사되지 않아, 관객이 분노를 쌓고 카타르시스를 터트릴 감정적 드리블 자체가 짧았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액션 영화에서 서사가 단순하다는 게 곧 허접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단순한 구조일수록 그 뼈대가 더 단단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1편과 2편이 성공한 건 탁월한 액션만이 아니라 그 액션이 빛날 수 있도록 감정선을 잘 설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범죄도시4 어느 편이랑 비교해서 봐야 하나요?
A. 제 경험상 1편과 2편을 먼저 보고 오는 게 가장 좋습니다. 시리즈 특유의 캐릭터 관계나 개그 코드가 누적되어 있어서 4편의 장이수 장면들도 훨씬 재미있게 보입니다. 3편은 생략해도 4편 감상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Q. 범죄도시4 빌런 백창기가 왜 약하게 느껴지나요?
A. 백창기는 단도와 스피드가 특기인 캐릭터인데, 마지막 결투 장소가 비행기 내부라는 매우 협소한 공간이었습니다. 구르거나 뛰어오를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강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싸우다 보니, 중반까지 쌓아온 위협적인 이미지가 마지막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인상을 줍니다.
Q. 범죄도시 시리즈가 계속 천만을 찍는 이유가 뭔가요?
A. 단순한 마동석 인기만이 아니라 권선징악 구조가 주는 카타르시스, 즉 악당이 확실하게 응징받는 장면에서 느끼는 감정적 해소감이 핵심입니다. 코로나 이후 복잡하고 무거운 영화들 사이에서 이 시리즈가 주는 단순하고 명쾌한 오락성이 오히려 더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Q. 허명행 감독이 연출을 맡은 게 맞는 선택이었나요?
A. 액션의 밀도와 마동석 타격감 측면에서는 합격점입니다. 다만 무술 감독 출신답게 액션 설계에는 강한 반면, 인물의 심리나 서사 구조를 촘촘하게 엮는 부분에서는 이전 감독들에 비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두 가지가 균형 있게 맞물려야 시리즈 특유의 쾌감이 완성된다는 걸 이번 편을 보며 다시 느꼈습니다.
결론
범죄도시4는 재미없는 영화가 아닙니다. 마동석의 액션은 여전히 시원하고, 장이수의 능청은 극장 분위기를 살려줍니다. 하지만 1편과 2편이 줬던 그 가슴 뚫리는 카타르시스에 비하면 이번 편은 분명히 한 두 단계 낮은 완성도였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마지막 격투가 끝난 뒤 박수가 치고 싶다기보다 "다음 편에선 좀 더 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1편부터 4편까지 총 관객 4천만 명, 역사상 최초 트리플 천만 시리즈라는 기록은 분명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 기록이 완성도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5편이 나온다면 빌런의 서사와 감정 드리블을 1·2편 수준으로 되살려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극장에서 확인하고 싶은 분이라면 1편과 2편을 먼저 복습하고 가시길 권합니다. 그래야 4편의 아쉬움도, 그 안의 재미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